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출판사 고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 겁니다. 인터넷에서 닳지도 않고 떠돌던 컬트 만화를 보기 좋게 포장하여 내놓았으니까요. 덕분에 일본의 버블 시대에 등장해 거짓말처럼 활동을 멈춘, 호들갑을 조금 보태면 전설 혹은 신화가 되어버린 오카자키 교코의 대표작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욕망과 청춘, 허무와 패션, 성정체성과 폭력. 서로 어울리기도, 어울리지 않기도 한 단어들이 엉킨 오카자키 교코의 만화는 시대를 뒤흔드는 현상에 가까웠습니다.
교코가 불의의 사고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없는 현재, 30년 전 작품 하나가 새로이 배달되었습니다. 잊혔던 작가의 유일한 이야기 책. 『우리는 모두 잊어버리네』는 작가 노트 모음집도 일상을 다룬 에세이도 아닙니다. 시? 동화? 혼잣말? 정의 내릴 수 없는 글들은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큰 불로 키우려 틔운 작은 불씨처럼, 만화에 스민 추락과 균열 같은 키워드를 글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망각은 오히려 좋은 기억법인 것 같습니다. 오래된 오카자키 교코의 흔적이 그를 더욱 뚜렷하게 만드네요.
교코의 한국어판 작품을 꾸준히 출간한 출판사 고트의 김미래 편집장과 그녀의 대표작, 새로 출간된 이야기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울로 소환된 도쿄 걸
출판사 고트는 오카자키 교코의 국내 번역본 대부분을 발간했어요. 김미래 편집장님의 개인적인 애정이 클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작가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요?
영화로 <헬터 스켈터>를 보고 원작 만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출판사를 시작하고 주로 아코디언 형태의 단편 책을 만들다가 우리와 더 어울리고 출간하면 좋을 만한 타이틀 작품을 찾던 중이라 오카자키 교코 작가의 만화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주변에서는 시리즈가 아닌 단편 만화이고 이미 볼 사람들은 인터넷 불법 번역본으로 다 봤을 거라 경쟁력이 없다고 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래픽 노블을 좋아해서 언젠가 직접 만들고 싶었거든요. 세미콜론과 미메시스에서 일했는데 공교롭게도 문학 파트에 몸담아서 만화책을 다루지 못했어요. 문학처럼 읽을 수 있는 단권의 만화에 대한 관심도 한몫했어요. 교코의 작품을 만화지도 안 쓰고 디자인도 아예 새롭게 하고 번역도 더 공들여 그래픽 노블처럼 만들자 싶었죠. 예를 들어 순문학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맨 앞 글자인 ‘다’를 경음으로 표기하는데 만화가인 타츠키 료는 ‘타’라고 써요. 이런 작은 차이도 제도화나 공식화의 기준에 만화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느꼈어요. 우리 출판사가 만화를 조금 다른 양식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오카자키 교코라는 개성 있는 작가가 더 없이 어울렸죠.
작가가 작품을 발표했던 시기인 1983년에서 1996년은 이른바 일본의 버블 시대입니다. 부유함과 방종이 샴페인 거품처럼 흘러넘치던 허무한 그 시절의 이야기가 2020년대의 우리나라에 여전히 유효한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교코의 작품은 시대는 다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다른 옷을 입어도 사람들은 결국 그런 이야기를 계속 읽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리고 교코의 만화는 그림의 선이 자세하거나 묘사적이지 않아서 이입하기가 쉬워요. 마치 스마일 도형처럼 도상이 단순해질수록 대상에 구애받지 않고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는 것처럼요. 같은 시대의 다른 작가가 그린 작품을 읽었을 때 철 지난 유머 때문에 물음표가 생길 때도 있었거든요. 교코의 작품은 시대를 너무 잘 표현하거나 그 시대와 주파수가 딱 맞아 이입한다기보다 시대의 양식을 날려버린 스타일에 독자의 생각을 새로 집어넣을 수 있는 점, 그런 자유도가 지금 시대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요.
교코의 대표작인 『핑크』, 『리버스 에지』, 『헬터 스켈터 』, 『치와와』를 발간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작품 중에서 대표작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선별 기준이 있었을까요?
작가의 작품이 일본에서조차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아요. 꾸준히 읽히는 작가들의 경우 선집이나 전집 같은 시리즈로 남아 있는데 교코의 작품은 그런 경전이 되지 못했어요. 이번에 나온 『우리는 모두 잊어버리네』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작가가 창작을 하고 개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러프하고 자기 세계 안에서 반복을 거듭해요. 근데 저는 작가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오히려 부지런해서라고 느끼거든요. 그때그때 드는 감정을 당장 표현하고 완전한 형태로 굳히기보다 다음 작품에서 더 입체적으로 발전시켜 결국 완성에 이르는 방식인 거죠. 캐릭터가 완성되는 시점에 만들어진 작품이 결국 대표작이 되더라고요.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리버스 에지』라고 생각해서 제일 먼저 발표했어요. 축구로 따지자면 손흥민 선수가 EPL에서 득점왕 하던 때의 커리어 하이를 느꼈달까요.(웃음) 『핑크』는 오래전 작품이지만 경쾌하고 동화 패러디 같은 여러 시도를 한 부분이 맘에 들었어요. 『치와와』는 교코의 단편집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은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 빼놓을 수 없었고요.
오카자키 교코의 단행본 표지들은 지금 봐도 과감하고 감각적입니다. 본인의 사진을 뒤표지에 수록한 적도 있고요. 고트 역시 책 한 권을 만들 때마다 다른 디자이너를 기용하죠. 번역본 디자인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만화책은 모두 뮤지션 앨범을 주로 작업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인 스팍스에디션(SPARKS EDITION)에서 작업해 주셨어요. 교코의 작품이 한 출판사에 나온 게 아니라 어떤 작품은 엄청 예쁘고 어떤 작품은 퀄리티가 되게 낮아요. 가장 먼저 일관성 있게 디자인하고 싶었어요. 교코도 팝 컬처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 꼭 책만이 아닌 BTS나 10cm 같은 뮤지션과 작업한 디자이너가 어울릴 거란 생각을 했어요.
저희는 어울리는 플레이어를 선정만 하고 이후는 자유롭게 맡기거든요. 스팍스에디션이 주로 앨범 재킷 작업을 하다 보니 앞 뒷면을 상반된 분위기로 디자인해 여운을 주는 느낌이 있어요. 『핑크』에 조연으로 나오는 소설가 지망생이 소설을 찢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표지에서 그 종잇조각들을 그래픽적으로 연출했고 『치와와』는 살해당한 주인공을 마치 영정사진처럼 검은 프레임에 넣어 디자인했어요.
같은 시대에 주목받던 사쿠라자와 에리카와 이후 세대인 미나미 큐타, 키리코 나나난처럼 드로잉에 가까운 작화로 여성의 자유와 허무를 다룬 작가들이 있습니다. 오카자키 교코의 작품을 ‘갸루 만화’라고 분류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구권에서 그래픽 노블이라 명명하는 작품들과 일대일 대응까지는 아니더라도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워낙 시리즈 만화가 강세이고 소년 주간지에서 연재된 후 나중에 갈무리되는 작품들이 항상 인기이다 보니 단권으로 출시되는 작품들은 잠깐 나왔다 재쇄를 못 찍고 절판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작품 중 명작이 꽤 많아 영화화되거나 연구가 되는 경우도 제법 많은데, 대중적인 인기와는 또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요. 오카자키 교코와 동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조용하고 순한 독자보다 일탈을 즐기거나 현실을 답답하게 느낀 독자가 좋아했던 작가로 기억하더라고요.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약간 힙스터들의 작가였던 것 같아요.(웃음)

공식 없는 욕망과 허무의 집합체
교코의 작품 속 주인공은 욕망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요. 『헬터 스켈터』의 리리코는 뼈와 성기, 안구를 뺀 나머지를 모조리 성형할 만큼 외형에 집착하고, 『핑크』의 유미는 직장인이지만 애완 악어를 사치스럽게 키우고 싶어 스스로 성매매를 선택합니다. 욕망이라는 키워드는 교코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나요.
어떤 욕망은 시대적으로 주입된 것이고 사실 그 욕망의 주머니가 된 개인은 소비 당하거나 파멸해 버린다고들 이해하잖아요. 교코의 작품에서는 좀 달라요. 『우리는 모두 잊어버리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몸을 판다고 말하지만 장기 매매가 아닌 이상 몸을 파는 것이 아니고 사실 파는 건 다른 것이다. 자아와 관련된 무언가를 판다고 했을 때 창작이든 매춘이든 등가 교환이 이루어진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사회 비판적인 상태로 욕망을 다루진 않아요. 『헬터 스켈터』의 리리코가 아름다움으로 사람들과 매스컴으로부터 추앙받을 때 신화적인 이미지와 별개로 아름다움이 파괴되면서 얻게 되는 강렬한 에너지도 있거든요. 그리고 그 에너지를 통해 또 다른 모험도 하게 되는 걸 보면 신체나 개인을 단순하게 욕망의 주머니로 다루진 않아요.
욕망을 쟁취하는 일직선의 이야기였다면 오카자키 교코의 작품이 이렇게나 흥미롭진 않았을 것 같아요. 사건의 결말은 독자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구불구불해요. 그런 면에서 작가는 이야기꾼이자 망상의 천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느끼기에도 선형적으로 잘 정리된 느낌이 아니예요. 메인 스트림의 작품들, 예를 들어 『슬램덩크 』에서는 한 캐릭터마다 롤이 명확하게 나눠져 있는데 교코 만화의 주인공들은 한 사람 안에 다양한 면면이 드리워져 있어요. 『리버스 에지』의 야마다는 성소수자이면서 여자와 사귀고 여사친의 남자 친구한테 괴롭힘을 당해요. 마동석 배우가 형사로 출연하는 작품이 대충 어떨 것이라고 그려볼 수 있는 건 캐릭터가 명확하기 때문인데, 야마다 같은 학생이 주인공인 만화는 일반적인 학원물이 될 수 없는 거죠. 작가 노트 중에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더라도 어떻게든 물에 뛰어들면 아름다운 헤엄은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치게 되는 물장구가 있다는 말처럼 작가도 자본주의가 싫고 무섭고 못생겼는데 그걸 배경으로 활보해 보려는 노력을 작품을 통해 했던 것 같아요. 인물들을 내세워서 이야기를 만들며 무언가 바꿀 수 있는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작품에 흐르는 ‘허무’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치와와』에 수록된 단편에서 수박 한 통을 혼자 맘껏 먹는 게 꿈이었던 주인공이 수박을 서리해 전부 먹어 치우고 난 다음 한때의 꿈을 쓰고 난 휴지처럼 생각해 버려요. 꿈이나 희망을 고취시키는 만화도 좋지만 이렇게 허무에 자리를 내어주는 만화도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오카자키 교코는 도쿄에서 나고 자란 뒤 일본의 고도 성장기 때 작가로서 정체화하게 된 사람이에요. 끊긴 도로와 고층 빌딩을 세우는 장면, 공사장을 아지트 삼은 무리들, 옛 기억을 더듬어 꿈처럼 넓게 펼쳐진 꽃밭을 보러 갔는데 아파트밖에 없는 장면들. 작가는 자신이 적을 두고 자랐다고 생각한 곳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들로부터 상실감과 노스탤지어를 느꼈던 것 같아요. 시골의 꽃이 자연스럽게 핀 들꽃이라면 도시의 꽃은 인공적인 풍경이라 조명을 비춰야 빛나는 거잖아요. 애를 쓸 때는 괜찮지만 연료가 끊기면 얼마나 삭막해질까 하는 불안과 허무가 작품에 투영되었을 거라 생각해요.
괴롭힘당하는 게이와 ‘먹토’하는 모델, 스토킹하는 소녀 등이 한 학교에 모여 이상한 나날을 보내는 『리버스 에지』, 토막 살인 당한 ‘치와와’라는 소녀의 주변인을 다큐멘터리 좇는 『치와와』처럼 작가의 작품은 다분히 영화적이기도 해요. 실제로 많은 작품이 영화화되었죠.
오카자키 교코는 여러 문화를 열렬하게 즐겼고 일본에 정박하기보다는 외국 시나 노래 가사, 문화들을 흡수하고 번역하려 했던 흔적이 있어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리버스 에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만화와 느낌은 완전히 다른데 강둑에서 시체를 발견한다는 콘셉트는 겹쳐요. 이렇게 여러 문화에서 흥미로운 점들을 뚝뚝 떼 오다 보니 감각적이고 영화적인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영화화는 또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요. 『헬터 스켈터』는 영화 감독의 역량이 뛰어나서 만화로만 상상하던 색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던 반면 『리버스 에지』는 이미 만화 안에서 완벽하게 종결된 이야기라 좀 심심했거든요.(웃음)
『헬터 스켈터』는 2004년 교코에게 제8회 테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 대상을 안겨준 대표적인 걸작입니다. 개조에 가까운 신체 성형과 집착은 영화 <서브스턴스>를 떠올리게 해요. 만화가 발표된 게 1996년, 영화화되어 화제가 된 게 2012년, 상을 받은 것이 2004년. 주기적으로 시선을 끄는 이 작품을 올해는 또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헬터 스켈터』는 미의 정점에서 몰락하는 이야기의 원전이나 고전 같은 느낌이 있어요. 조금 뻔한 점도 있지만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덧붙여 이번에 『우리는 모두 잊어버리네』를 읽고 교코의 이야기는 몰락한 후에 비로소 시작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어요. 그다음을 추적하고 상상하는 게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또 이번 책에서 자기 눈을 뽑아 포르말린에 넣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항상 보여지고 평가받던 사람이 정말 자신을 보고 싶을 때 눈 두 개 중의 하나를 분리해서 나를 관람하도록 하는 게 너무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K-POP 산업이 이렇게나 커지고 아이돌이나 아티스트를 선망하는 시대에 분명 의미가 있을 거예요.

에스키스 같은 이야기
아이러니하게도 『헬터 스켈터』 발표 후 만화가로 정점에 섰을 때 교코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강제로 절필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잊어버리네』는 사고 직전 1년 동안 연재한 글을 묶어 2004년에 발표한 책입니다. 번역본을 출판하게 된 일련의 과정이 궁금해요.
오카자키 교코를 좋아하는 어떤 번역가분이 먼저 제안을 해왔어요. 아직 출판 못 한 만화도 많은데 글을 소개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 고민하다가 출간을 결심하고 출판사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원본 텍스트나 당시의 자료가 하나도 안 남아 있었어요.(웃음) 출판사와는 계약만 마치고 저희가 구한 책을 분리하고 스캔해서 번역본을 만들 수 있었죠. 계약 사항 중 하나가 표지 디자인은 변경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당시 드림팀이 모여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표지를 구현하기 위해 스캔도 해보고 사진도 찍어보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어요. 이런 면도 결국 오카자키 교코의 책답구나 싶었죠.
작가의 만화는 큼지막한 사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면 글은 여백에 먼저 닿는 느낌이었어요. 사소한 것, 주변부에 대한 세밀한 시선이 읽혔어요. 책에 실린 글들은 만화 속 내레이션을 모아 옮긴 것 같기도 하고 시나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잊어버리네』는 오카자키 교코 만화의 해설서가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이 이야기를 짓는 과정을 담고 있어요. 가볍게 뱉은 메모나 낙서가 나중에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는지 그 추동과 결과를 담은 자료는 많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작품의 사소한 불씨들은 거의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작가가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어 신화가 되었기 때문에, 이 불씨마저 긁어모아 유일한 책이 되었죠. 그래서 이 책을 에세이로 분류하지 않고 ‘이야기’라고 불러요.
수록 작품마다 몇 단어에 강조 부호인 방점이 붙어 있어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특별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 방점의 묘미죠.(웃음) 스타카토로 끊어 얘기하면서 힘을 싣는 거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90년대 책이라 옛날 양식의 디자인으로 방점이 찍혀 있어서 더 두드러지는 면도 있을 거예요.
교코는 만화에서 오븐에 머리를 넣어 자살하는 장면을 자주 그렸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실비아 플라스의 그림자가 더욱 짙게 느껴졌거든요. 혹시 두 사람 사이에 연결점이 있나요?
분명히 좋아했을 것 같긴 한데 직접적으로 언급한 건 못 봤어요. 미국과 영국 신에 항상 관심이 있었고 글보다는 결정적인 사건이나 캐릭터가 강한 인물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젤다 피츠제럴드나 영화 <비브르 사 비>의 주인공처럼 입체적이고 독창적인 인물들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했거든요.
만화 제목에 비해 이번 책의 제목은 다소 서정적으로 느껴져요.
임팩트가 없어 보여 제목을 바꿀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체할 수 있는 제목이 없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는 잊어버리면서 사는 게 당연해서 잊어버리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잖아요. 3만 상자의 사료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없듯이 개인의 역사도 당연히 누락이 훨씬 더 많고 그렇게 남은 것들로 이뤄진 게 한 사람일 테니, 잊어버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교코에게는 기억하는 방식인 것 같아서 재밌게 느껴졌어요.

오카자키 교코와 미래
오카자키 교코의 필모그래피는 30년 전에 멈췄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들은 움직이고 있어요. 교코의 휴지기는 어떤 모양인가요?
일본에서도 시각 자료나 공식 뉴스가 전혀 없는 상황인데요. 친했던 뮤지션 오자와 켄지의 공연에 갔던 일처럼 측근의 한두 마디로 추측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2015년 대규모 전시가 있었던 때도 다른 코멘트는 없었어요.
패션 매거진에 일러스트를 그렸고 음악 채널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패션과 음악을 좋아하는 걸로 알려져 있어요. 그런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오카자키 교코는 활동 당시 친한 뮤지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거나 음악 방송에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팝 컬처와 가깝게 지냈어요. 일본 팬분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관련된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요. 만화 작품부터 영화 작품 리스트, 방송에 나왔던 모습과 재활 일기까지 있으니 번역기를 사용해 둘러보는 걸 추천할게요.
번역본 출간 작업을 하는 동안 실제로 닿았던 작가님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태라 눈짓과 도구, 대리인의 힘을 빌려 의사소통했어요. 하지만 모든 검토와 컨펌은 모두 본인이 했고 한국판 표지가 멋지고 맘에 든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우리나라에서 나온 오카자키 교코의 만화책을 보고 대만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생겼거든요. 꾸준히 해외판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반갑게 생각하고 계셨어요.
앞으로 꼭 출간하고 싶은 오카자키 교코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Happy House』라는 작품인데 작가 본인도 책을 안 갖고 있더라고요. 『핑크』에 나오는 꼬마애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조숙한 꼬마 여자아이의 사랑스러움과 잔망스러움이 포인트인 작품이고요. 『The End of The Wolrd』는 온 세상에 나와 너밖에 안 남은 로드 무비 같은 느낌이라 언젠가는 소개하고 싶어요. 대표작 중 하나인 『Tokyo Girls Bravo』도 꼭 내고 싶은데 판권이 너무 비싸네요.(웃음)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우리는 모두 잊어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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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에지 River’s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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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령
여러 패션 매거진의 피처 디렉터로 일하다 지금은 자유롭게 글을 쓴다.
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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