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부채질하는 재난: 환경부는 약자 비명 듣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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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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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같이탐구생활
붉은점 13편 산불과 불평등
더 늘어나진 않은 건조일수
그런데도 산불 위험은 커져
기후위기가 끌어올린 위험
탄소배출 줄일 수밖에 없어
산불로 큰 피해 본 건 시민들
시민 목소리 반영은 아직 미비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산불 위험도 더 커진다. [사진 | 뉴시스]


산불이 강원도와 경북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수많은 노인과 사회적 약자가 화마火魔에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산불에서 보듯, 재해는 언제나 사회적 약자부터 덮칩니다. 지구가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금,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후정책을 짜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정부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을까요?

기후위기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약한 사람들입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뉴스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대표적일 겁니다. 하다하다 기후위기까지 불평등을 부추긴다는 건데,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세계가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점점 건조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최근 강원도와 경북을 덮친 대형 산불은 '건조'의 위험함을 뼈아프게 보여주는 듯합니다. 

문제는 통계가 이런 위험함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기상특보를 통해 1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을 확인해 보시죠. 건조를 다루는 우리나라의 기상특보는 건조주의보와 건조경보로 나뉩니다. 건조주의보는 실효 습도 35% 이하 상태가 2일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건조경보는 실효 습도 25% 이하 상태가 2일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될 때를 말합니다. 

10년 전인 2015년 1월 1일부터 2015년 3월 31일까지 강원도와 경북의 건조주의보는 강원도 471건, 경북은 523건이었습니다. 건조경보는 각각 248건, 105건이었죠. 2025년 같은 기간엔 어땠을까요? 날씨가 10년 전보다 더워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조주의보든 건조경보든 더 늘어났을 공산이 큽니다. 

과연 그럴까요? 놀랍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2025년 같은 기간 강원도와 경북에선 각각 408건, 417번의 건조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건조경보는 180건, 73건이었죠. 지난 10년의 통계를 종합해보면, 건조주의보는 13.4%(강원도), 20.3%(경북), 건조경보는 27.4%(강원도), 30.5%(경북) 줄어든 셈입니다.

비단 건조 특보만이 아닙니다. 건조 일수 역시 2015년 120건에서 2024년 78건으로 35% 감소했습니다.[※참고: 건조 기상특보의 횟수는 지역별, 일별을 구분해 합산했습니다.] 

[사진 | 뉴시스, 참고 | 지역별 합산]


그렇다면 건조와 산불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산불 위험도를 측정하는 지표는 이미 기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건 FWI(산불위험지수ㆍFire Weather Index)입니다. FWI는 0~99로 표기합니다. 숫자가 높을수록 수분 함유량이 적다는 의미입니다. 20을 넘으면 산불 발생 위험이 크다고 평가합니다.

2021년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기후위기와 산불 간의 상관관계를 시뮬레이션한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결과를 보면,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더 오를 때(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대비)와 2.0도 오를 때 FWI 차이가 분명했습니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에서 2.0도로 0.5도만 상승해도 FWI는 크게 높아집니다. 일례로, 지중해 부근과 북미 서부 지역의 산불 발생 건수는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동아시아는 3~4월에 집중됐던 산불조심기간이 12~2월까지 넓어졌습니다. 이 또한 FWI가 상승한 탓입니다. 

카이스트 연구팀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연구 결과도 방향성이 같습니다. 이들이 3월 31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산불이 위험한 날은 최대 120일까지 늘어났습니다.

FWI를 기준으로 20을 넘긴 날이 최대 4개월 증가했다는 건데, 가장 큰 위험 지역은 경북이었습니다. 특히 소백산맥 인근은 FWI가 20을 초과하는 날짜가 최대 151일에 달했습니다.

산업화 이전 이 지역의 FWI 20 초과 날짜는 최소 14일이었습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1.5도 이상 높아졌다는 걸 감안하면 이 연구 결과는 지구 온난화로 산불의 위험성이 얼마나 커졌는지 가늠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법 개정 작업은 아직도 답보 상태입니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가 "현시점에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7개월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 새로운 '법'도 새로운 '탄소감축 목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환경부는 올 7월까지 기본 얼개를 갖추고, 9월에는 탄소감축계획을 유엔에 제출하겠다는 로드맵을 세워놨습니다. 하지만 진짜 다양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공론화 과정은 없습니다.

환경부가 '산불 취약지역에 사는 진짜 주민'이나 '기후변화로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아직 없습니다. 그래놓고 무엇을 근거로 새로운 탄소감축계획을 만들겠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정부도 이젠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산불로 진짜 취약한 대상이 누구인지 밝혀졌으니까요.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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