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9to6’ 직장인의 시간, 이대로 괜찮은가요?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나의 노동기] 무직 1년 차에 돌아보는 직장 생활
직장생활을 그만둔 이후,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는 스마트 패드와 펜슬. 2025년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썼다. (필자 제공 사진)    


그간 서비스직으로 2년, 사무직으로 3년의 직장 생활을 했다. 일을 쉰 지 1년이 넘어가는 지금, 5년 간의 노동 경험에 대해 돌아보았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
 
늘 중요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 일이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내가 어떻게 느끼냐에 달려있다. 나는 어디에서든 재미와 중요함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을 내 자존의 원천으로 삼았다.
 

재미는 내가 찾아내면 그만이지만, 중요함은 타인의 인정까지 필요로 했다. 조직의 가까운 구성원들은 나를 어느 정도 중요하게 취급해 주었다. 그러나 회사의 입장에서 나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이는 성과 평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를 격려해 주는 아기 고양이들. 업무용 PC 배경화면이었다. (필자 제공 사진)    


 
가장 오래 다녔던 A 회사에서는 성과 평가에 따른 연봉 결정 방식을 공지했다. 상위 n%는 연봉 인상, 하위 n%는 동결, 때에 따라 삭감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아마 회사의 의도대로, 나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긴장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내가 안전할 수 있게끔 동료들이 일을 못 하기를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B 회사의 성과 평가는 가스라이팅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안엔 지적 받지 못했던 실수들을 내 성과의 전부인 양 말했다. 나는 그간 모든 일을 엉망으로 해왔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다른 동료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평가를 받았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우리는 평가 후의 혼란을 홀로 견디었다. 누군가는 심리상담소를, 누군가는 점집을 찾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물었다.
 
회사에서 마주친 대부분의 사람은, 어쨌든 서로를 존중했다. 성과 평가에서 지적만 하던 리더 역시 나를 존중했다고 생각한다. 평가에 상처받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더는 회사의 입장을 전달해야만 했고, 회사의 입장인 즉 ‘너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잘하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를 전제로 하는 연봉 기준, 아껴두었던 지적들로만 이루어진 평가. 이를 겪으며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소원의 크기만큼 무너졌었다.
 

흔히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므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은 사람과의 면접 후 시작되어, 계속 사람들하고 이루어진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직원이 사람이라는 것을 과연 어디까지 고려하고 있을까?

출근할 때 늘 오르던 계단. 언젠가 한 번은 무지개가 비춘 적이 있다. (필자 제공 사진)    


 
사람같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
 
지친 회사 생활의 쉼표가 1년 이상으로 길어지며, 일상에 여러 변화가 생겼다.
 
무직 2개월 차 무렵엔 화장실 수전을 교체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저렴한 건 2만 원 정도였다. 교체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화장실 수도가 완전히 잠기질 않아 곤란했던 시간이 2년 정도 된다. 자려고 누우면 화장실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 아주 거슬렸다. 세게 꾹 눌러보기도, 살짝 비틀어 닫아보기도 했지만 물은 완전히 잠기지 않았다. 겨울엔 동파 방지 때문에 온수를 틀어놓으면, 방울 방울이 아니라 졸졸 흐른 온수가 화장실 가득 안개를 만들어냈다. 화장실 천장에 물방울이 맺혀 한 방울씩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불편했던 시간을 무려 2년이나 지냈는데, 겨우 2만 원과 약 30분 정도로 완전히 해결한 것이다.
 

지금 화장실에는 언제든 천장을 닦을 수 있도록 밀대에 걸레를 끼워두었다. 겨울에 동파 방지를 하면 여전히 물이 맺히는데, 그걸 닦기 위함이다.

화장실 수전 교체에 필요했던 몽키스패너를 비롯한 여러 생활 도구를 모아둔 서랍. (필자 제공 사진)    


 
밀대와 걸레를 사두고, 고장 난 수전을 온라인으로 주문해 교체하는 것. 회사에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일인데, 왜 못했을까?
 
퇴사한 다음 날, 쓰레기 집을 이루었던 집에서 쓰레기를 많이 버렸다. 제일 큰 종량제 봉투에 서너 번쯤 버렸다. 지금은 좀 사람 사는 집같이 되었다. 집이 점차 정리될수록 의문이 짙어졌다. ‘전에는 왜 못했을까?’
 
회사에 다닐 때는 거의 모든 끼니가 배달음식이었다. 지금은 냄비밥을 해서 소분해놓고, 반찬도 직접 만들어 먹는다. ‘집 치우기’, ‘배달음식 끊기’는 회사에 다니는 내내 반복했던 다짐인데, 회사를 그만두니 이만큼 변화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제법 충격적이다.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고, 자기 전과 후로 스트레칭을 한다. 아침 일과에 따라 정돈된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한 지 이제 반년쯤 됐다. 생활이 건강해지며 체중도 줄어서 표준 범위로 돌아왔다. 회사에 다닐 때는 나 자신을 ‘의지박약’, ‘다짐해 봤자 안 되는 사람’ 정도로 규정했었다. 이제는 나 자신이 ‘한다면 하는 사람’,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집밥 해 먹는 1인 가구의 냉장고. 왼쪽 위에 쌓인 게 냄비로 지은 잡곡밥이다. (필자 제공 사진)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당연히 물리적인 시간일 것이다. 왕복 2시간, 근무 8시간, 중간에 점심 1시간. 회사에 다니는 것만으로 하루 중 11시간이 매인다. 여기에 가끔 야근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술도 마시고, 괜히 새벽까지 숏폼을 보다 잠을 미루기도 한다. 평일에는 출근은 해야 하니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주말에는 또 밀린 잠 자느라 하루가 다 간다. 17시간도 내리 잔 적이 있다. 그만큼 피곤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평일엔 마음 놓고 잘 수 없는 잠을 오늘이라도 자야 한다는 보상 심리도 있었다.
 
나는 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실업급여를 수급 중일 때에는, 회사가 곧 나를 병들게 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집안일이 완전히 무너지진 않겠지만, 회사에 다니게 되면 아침에 모닝페이지를 쓰고 스트레칭을 하는 게 사치스러운 취미처럼 여겨질 것 같다.
 
이제는 실업급여 수급도 끝났고, 모아놓은 돈도 다 까먹어가니 재취업만이 유일한 선택지로 여겨진다. 사람이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법 말고는 돈 버는 법을 모른다. 또 회사에 다녀 경력을 쌓아야만, 내 경력을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가야만, 조금씩이라도 급여가 오르고 노후 대비도 가능해질 것이다.
 
정말로 돌아가야만 한다. “제발 다시 회사에 다니게 해주세요.” 빌고 싶어지기도 한다. 재취업에 성공해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되었을 때, 내 생활 역시 성공적으로 지켜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