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
조선의 유학자 (1498–1557)
조욱(趙昱, 1498년 8월 21일~1557년 12월 10일)은 조선의 유학자다. 자는 경양, 호는 우암, 본관은 평양이다.
조욱
趙昱 | |
---|---|
조욱이 기묘사화의를 피해 제자들과 더불어 도학을 강론하던 정자인 양평 세심정 | |
이름 | |
자 | 경양(景陽) |
호 | 용문(龍門), 보진재(葆眞齋) |
시호 | 문강(文康)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98년 8월 21일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1557년 12월 10일 | (59세)
사망지 | 미상 |
국적 | 조선 |
성별 | 남성 |
본관 | 평양(平壤) |
부친 | 조수함(趙守諴) |
모친 | 전주 이씨(全州李氏) |
학문 활동 | |
분야 | 성리학 |
주요 저작 | 《용문집》 |
서훈 | 이조참의 추증 |
생애
편집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오르지 않고 용문산으로 들어가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의 높은 학식과 인격이 세상에 알려지자 '용문 선생'이라 불리었다. 명종 때 현사로 뽑혀 선무항 내 섬주부직을 받았고, 장수 현감을 지냈다. 당시의 저명한 학자인 이황·서경덕과도 가깝게 지냈다. 시·그림에도 뛰어났으며 죽은 후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용문집》이 있다. 운계서원에 제향되었다.